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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聖地)의 마주침이 성서(聖書)의 가르침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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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봉호
댓글 0건 조회 1,793회 작성일 22-06-18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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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지(聖地)의 마주침이 성서(聖書)의 가르침을 준다.

 

어린 왕자에 보면 지리학자에 관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난 탐험가가 아니거든. 나는 탐험가와는 거리가 멀단다. 지리학자는 도시나 강과 산, 바다와 태양과 사막을 돌아다니지 않아. 지리학자는 아주 중요한 사람이니까 한가로이 돌아다닐 수 없지. 서재를 떠날 수가 없어. 서재에서 탐험가들을 만나는 거지. 그들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하여 그들의 기억을 기록하는 거야. 탐험가의 기억 중에 매우 흥미로운 게 있으면 지리학자는 그 사람이 정말 성실한 사람인지 어떤지를 조사한단다.”

 

지리를 발로 뛰면서 몸으로 익히지 않고 책상에 앉아서 머리로만 이해하려는 관념적 태도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글이다. 지리를 알려면 이리저리 구석구석 다녀봐야 한다. 지리학자가 지리학책을 보면서 요리조리 생각만 굴려서는 지리의 본질과 핵심을 파악할 수 없다. ()을 떼고 지리를 체득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지리학(地理學)을 강의할 수 있는 지리학자가 될 수 있다.

 

목회자는 성서학(聖書學)을 공부한 사람이다. 그러나 성서학으로는 성서를 제대로 알 수 없기에 성서학 현장인 성서의 땅으로 간다. 성서의 땅에서 책상과 강단에서 가슴으로 느끼고 머리로 깨달은 진리를 손발로 움직여 본다. 2000년 전 예수님을 스쳐 지나갔던 흙과 모래, 먼지로 뒤덮은 광야와 유대산지에 선다. 그곳에 바람을 맞고 뜨거운 태양을 느끼고 하나님의 역사적 흔적을 보면서 성서의 지식을 체득(體得)하여 학()을 완성해 간다. 욥의 고백처럼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기 42:7)”는 말을 체험한다.

 

성지(聖地)의 예수님은 떠나야 만날 수 있다. 지금 여기를 떠나 저기 즉 낯선 땅인 성서의 땅으로 가야 한다. 그러면 책상과 강단에서 체험하지 못한 낯선 마주침을 경험할 수 있다. 책상과 강단에서 가르치고 배운 말씀의 파편이 역사의 현장에서 체득되고 조합되어 가르침을 준다.

 

노동 시인 박노해 작가는 자신의 시 <정신의 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책상에서 지리학을 배우고 독도법을 배운 사람들은 지도를 펴들면 산의 높낮이와 길이가 숫자로 떠오른다고 한다. 산 사람이나 특전사 요원들은 지도를 펴들면 먼저 새소리 물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두 발로 산과 계곡을 헤매이고 수없이 실시되는 야외훈련을 통해 손발과 몸으로 독도법을 익혔기 때문에.”

 

필자도 훈련소에서 독도법을 배울 때, 자주 들었던 말이다. 지식의 발로(發露)()로부터 시작된다. 성서의 땅에 발로 서면 성서의 파노라마가 그려지고 발로 걸으며 성서를 몸으로 배운다. 현장에서 체득한 지식이 가슴으로 정리되어 입으로 선포될 때 감동을 줄 수 있다. 산 지식은 책상이 아닌 현장에서 나온다.

 

성지순례는 새로운 발견이 아니다. 새로운 눈이 뜨이고 이전에 있었던 것, 귀로 들었던 것, 상상했던 것들을 새로운 눈으로 보는 것이다, 새로운 눈은 성서를 새롭게 보게 하고 새로운 진리를 깨닫게 한다. 성지순례는 새로운 경험을 통해 성서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뜨게 할 것이다. 남이 가르쳐 준 지식이 아니라 내가 몸으로 체득한 성지의 지식으로 나의 해석을 만들어 낼 것이다. 성지(聖地)의 마주침이 성서(聖書)의 가르침()을 준다.

 

620일 이스라엘 성지 순례를 준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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